[LIFE]1943년 튀니지 전역의 사진들 역사


너무나 많은 2차대전의 격전지들이 역사, 회고록, 소설과 영화에서 불멸의 존재로 남아있어서, 평범한 역사 애호가들조차 그 이름만으로도 냉혹하고 충동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사이판, 스탈린그라드, 바스토뉴, 노르망디, 오키나와, 레이테만. 이 모든 전투들의 세세한 내용은 우리 대부분에게 모호하지만, 조금만 골몰히 생각해보면 최소한 아시아와 유럽 전역에서 어디에서 이 전투가 일어났는지 정도는 집어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만이 시디 부 지드라는 지명을 알아들을까? 엘 가타는? 세덴은? 와디 아카리트는? 이 전투를 비롯해 이름이 오랫동안 잊혀진 전투들도 크고 작게나마 2차대전의 경로와 결과를 결정짓는데 기여했다. 태평양의 마샬 제도, 마리아나 제도, 혹은 유럽에서가 아니라 북아프리카의 사막과 마을에서 일어난 이 전투들은, 연합군과 추축군이 처음으로 싸운 장소-그리고 그 뒤 몇년간 싸운 장소-가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를 비롯해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 가장자리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올 지도 모르겠다.

황량하고 많은 부분이 잊혀진 북아프리카 전선이 끝나고 70년 뒤인 지금 LIFE.com은 1943년, 전역이 거의 끝나갈 무렵의 튀니지에서 엘리엇 엘리소폰이 찍은 사진들-이 중 상당수는 LIFE지에 실리지 못했다-를 제공하고자 한다. 북아프리카에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의 숫자는 전쟁 기간동안 유럽과 태평양에서 입었던 수백만명의 손실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편이지만 그 곳에서 싸운 양측이 결코 편했던 것은 아니다. 거의 10만여명의 병력이 죽었고 이 피해는 연합군(영국, 미국, 자유프랑스 등)과 추축군(이탈리아, 독일, 비시프랑스)이 비슷하게 나누어가졌다. 이 전역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는 영국으로서,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와 항복한 병사들을 포함하면 그 수치는 20만명을 넘는다.

1943년 5월 LIFE지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연합군의 마지막 공세는 독일군을 완전히 뿌리뽑았다. 5월 7일 튀니스로 4대의 영국군 장갑차가 입성할때까지도 수천명의 독일군 장교와 병사들이 길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서성이고 있었다. LIFE지 특파원 윌 랭이 튀니스의 마제스틱 호텔에 방을 얻으로 갈때까지도 독일군 장교들은 여전히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연합군의 압박은 끊임이 없었다. 대담한 진격행렬이 사방에서 해안으로 몰려들어 적을 수백개의 가망없고 무력한 작은 부대들로 분리해버렸다. 붕괴는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독일군 차량화 부대는 자신들의 차량에 단순히 백기를 장식한채로 연합군전선으로 차를 몰고 왔다. 한 영국군 장군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면서 말했다. "요 3일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믿을수가 없군요. 독일군은 이런 엄청난 항복 광경을 본적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적이 없으니까요."

북아프리카 전선이 끝나고 서부 반구의 연합군의 눈은 유럽으로 향했다. 1943년 7월 미국, 영국, 캐나다군은 시칠리아에 상륙하면서 무솔리니의 로마와 나찌가 지배하는 파리를 향한 길고도 잔혹한 진격을 시작했고, 궁극적으로는 2년 뒤엔 베를린으로 향하게 되었다.


1.LIFE지 설명:"전차-야포팀이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다. 군전문가들에 의하면 105mm 야포를 하프트랙에 장착한 이런 부대들이 튀니지 지상전의 '필승 조합'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2.LIFE지 미게재. 2차대전중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미군 야포가 위장진지에서 독일군을 향해 불을 내뿜고 있다.

3.LIFE지 미게재. 1943년 2차대전중 튀니지, 미군 야포.

4.LIFE지 아카이브의 사진 뒷면에 적힌 설명:"전선 근처의 탄약고에 도착하고 난 뒤 2톤반 하프트랙을 그물망으로 감싸고 있다. 탄약은 밤중에 야포로 옮겨졌다. 탄약은 클로버잎형 105mm 포탄(포탄 3개 묶음)이었다."

5.1943년 2차대전중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더글라스 A-20 인트루더기들이 대형을 유지한채 튀니지의 적진에 폭탄을 떨어트리려 하고 있다.

6.LIFE 아카이브에 있었던, 1943년 북아프리카 전역의 튀니지에서 보낸 사진과 (별특징없이 풀로 붙여진) 밀착인화지.

7.LIFE지 미게재. 1943년 2차대전중 튀니지, 사막풍경.

8.LIFE지 설명:"대전차부대원 3명이 스투카 폭격기의 공습 중에 여우굴에 피신해있다. 3인치포로 무장한 미국의 구축전차들은 독일 제10기갑사단을 무찌르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43년 튀니지.

9.1943년 튀니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세네드의 독일군 진지를 공격하면서 연막 속으로 돌진하는 미군 병사들.

10.LIFE지 설명:"전투 첫날 ME-109의 기총소사를 당하고 피와 기름범벅이 된 하프트랙 사수가 술파제를 어떻게든 먹어보려고하고 있다. 이를 도와주고 있는 장교는 계속해서 그의 목에 물을 부어넣어줬다. 그 하프트랙에 있던 다른 3명은 전사했다."

11.LIFE 아카이브의 사진 뒷면에 적힌 설명. "세네드 전투에서 사로잡힌 독일군 부상병." 1943년 튀니지.

12.LIFE지 미게재. 1943년 튀니지, C레이션

13.LIFE 아카이브에 있었던, 1943년 북아프리카 전역의 튀니지에서 보낸 사진과 (별특징없이 풀로 붙여진) 밀착인화지.

14.LIFE지 미게재. 1943년 2차대전중 북아프리카, 미군 조지 S.패튼 중장

15.LIFE지 미게재. 1943년 북아프리카, 미군 병사들.

16.1943년 북아프리카 튀지지 전역, 미군 병사들.

17.LIFE 아카이브에 있었던, 1943년 북아프리카 전역의 튀니지에서 보낸 사진과 동봉된 (별특징없이 풀로 붙여진) 밀착인화지.

18.1943년 튀니지, 세네드 근처의 독일군 진지에 대한 연합군의 공격에서 사로잡힌 추축군 포로들을 가두어 놓고있는 철조망.

19.LIFE지 아카이브의 사진 뒷면에 적힌 설명. "카드놀이를 하는 이탈리아군 포로들" 1943년 튀니지.

20.LIFE지 아카이브의 사진 뒷면에 적힌 설명. "세네드 근처의 독일군 진지에 대한 연합군의 공격에서 사로잡힌 독일군 포로들" 1943년 튀니지.

21.LIFE지 설명:"북아프리카의 기갑사단 사령부를 방어하고 있는, 선인장으로 위장된 하프트랙."

22.LIFE지 미게재. 1943년 튀니지, 기동불능 상태의 미군 M3 전차.

23.LIFE지 미게재. 1943년 튀니지, 사막의 비행기 잔해.

24.LIFE지 아카이브의 사진 뒷면에 적힌 설명. "독일군 포진지 배후의 포격당한 건물." 1943년 튀니지.

25.1943년 튀니지, 독일군 묘지.

덧글

  • 존다리안 2013/03/21 23:14 # 답글

    미군애들은 105mm 야포 자주화를 무진장 사랑하나 봅니다.
    하프트랙에도 달고 망리 차체에 달아 프리스트 자주포 맹글고 심지어 셔먼에도 달고...
    이 사랑은 지금도 이어져 아예 C-130 건쉽에도 105mm 야포 답니다.
  • 유리멘탈 2013/03/22 00:03 #

    당시에도 미군에게 105mm가 workhorse였다고들 할 정도니 말이죠 ㅎㅎ
  • BOLT 2013/03/22 00:28 # 답글

    81mm 박격포 보니 참..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아주 ㅋㅋㅋ
    만든 사람은 저게 반세기가 더 지난 뒤에 아시아의 모 국가에서 계속 쓰일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요 ㅋㅋ;;;
  • 유리멘탈 2013/03/22 09:26 #

    저걸 들고있는채로 찍힌 병사분들도 아마 상상도 못하지않았을까 합니다ㅋㅋ
  • 행인1 2013/03/22 09:00 # 답글

    미군이 본격적으로 참전한(그리고 초반이 시원찮았던) 북아프리카 전선의 사진이군요. 그나저나 저기가 정리되고 난 다음에 이탈리아로 안가고 프랑스로 진격했으면 좀 달라졌을라나...
  • 유리멘탈 2013/03/22 09:29 #

    노르망디에서 연합군 기갑부대가 겪어야했던 고난이 비슷하게 펼쳐졌던 그런 전장이지요orz.....

    if다보니 뭐라하긴 힘들지만.... 개인적으론 노르망디때 그렇게 보급 문제에 신경썼어도 항구문제등으로 골머리 좀 앓았다는 사실도 고려해봐야할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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